‘비현실성’이 지니는 기능은 무엇인가

■ 논제 되짚어 보기

전통적으로 이대는 논술 문제를 잘 만드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사변적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서강대와 연대 유형이 절반씩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시사적이면서도 문학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들의 취향을 고려, 대중문학에서 신화·환상 등이 갖는 의미를 논하라고 요구했다.

찬반 입장을 정하라고 했으니 가장 중요한 것은 제시문 분석과 독해 작업일 것이다. 찬반 입장을 서론에서 정하고 중반부에서는 제시문 3개에서 드러나는 비일상성의 의미를 추출하고 후반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비일상성이 갖는 의미를 서술하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이 문제를 접하는 순간 “내가 찬반 입장 중에서 어느 쪽을 고르는 것이 유리할까” 고민할지 모른다. 외견상으로는 비일상성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유리할 것처럼 보이지만 찬반 입장 어느 쪽에 서서 논지를 전개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이는 논제가 쌍방향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명한 판타지 문학 평론가 로즈메리 잭슨의 ‘환상성 전복의 문학’, 니체의 ‘비극의 탄생’, 바흐친의 ‘라블레와 그의 세계’, 이덕무의 ‘청장관전서’가 제시문으로 쓰였다.

잭슨은 판타지 문학에 대해서 우호적이다. “판타지 문학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것을 보여 줌으로써 오히려 현실에 대해서 눈뜨게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제시문에서는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과 신화와 힘에 대한 찬양이 교직하고 있다. 니체의 이런 주장은 자칫하면 파시즘이나 마초이즘에 대한 경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세 번째 제시문은 2004년 연대 논술시험에서 나왔던 라블레(프랑스 희극 작가)에 대한 러시아 평론가 미하일 바흐친의 소고이다. 그는 축제가 민중에게 웃음을 되찾아 줌으로써 억압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제시문은 책에 미친 바보라고 스스로를 불렀던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덕무의 글이다. 그는 많은 책을 읽었지만 소설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었다. 수호지, 삼국지연의 같은 고전에 대해 그는 비루하기 짝이 없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즉 이 제시문에 대해서 찬성의 입장을 택할 경우, 환상·신화·축제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고, 이 제시문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택할 경우, 세 가지 키워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써야 논리적인 글이 될 것이다.

- 신진상·지식아카데미 독서·논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