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것·작은 것' 무엇이 더 중요한가

■ 논제 되짚어 보기

고려대학교 논술고사는 지난 2004년부터 공통 주제를 찾고 제시문 사이의 관계를 밝힌 뒤 의견을 논술하라는 식으로 정형화돼 왔다. 분량과 영어 지문의 유무 차이가 있을 뿐 수시와 정시가 비슷하다.

고대 논술 시험을 가리켜 개념분석형이라고 한다. 제시문의 공통 주제를 찾고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각 제시문의 핵심 문장을 찾고 명제화한 뒤 개념을 추출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논제의 공통 주제는 ‘큰 것과 작은 것’이었다. 개인과 사회를 떠올리기 쉽지만 ‘큰 사회와 작은 사회’, ‘큰 조직과 작은 조직’처럼 같은 범주에 놓고 논지를 전개하는 것이 좀더 바람직하다. 사회과학 서적에서 어려운 제시문을 골라 뽑았던 고대였지만 올해는 평이한 수준이었다.

제시문의 중심 문장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고대는 전통적으로 개념을 설명하는 정의문 하나에 찬반으로 갈리는 제시문 3~4 개를 섞어 놓았다. 올해 역시 그 패턴을 따랐다. “조직의 비대화가 개인들을 비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한다”는 (가)제시문과 “큰 조직은 소집단의 구체성의 원리를 확대시켜야 한다”는 (다)제시문은 각각 문제제기와 대안 기능을 하고 있다. “작은 것은 큰 것을 따라갈 수 없다”는 (라)제시문은 이들 제시문과 반대 입장에 놓여 있다. (나)제시문은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분은 상대적”이라는 일종의 양시양비론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본론에서 제시문의 관계를 파악했으면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본론 후반부와 결론에서 피력하면 될 것이다.

일단 “작은 것이 큰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논지를 전개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과 조지 리처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라는 책 등을 인용해 합리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갈수록 거대해지는 현대사회를 비판했다. 이어 ‘풀뿌리 민주주의’와 ‘스몰 미디어 운동’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밖에 “크기를 보지 말고 그 가치를 보라”는 말처럼 크기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심성 자체를 비판하는 식의 논지전개도 가능했다.

- 신진상·지식아카데미 독서·논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