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을 구체적 사례로 비판하라

■ 논제 되짚어 보기

‘실존’과 ‘익명성’ ‘한국 사회의 문제점’ 등의 키워드를 볼 때 소설 ‘어린왕자’를 제시문으로 인용했던 지난 97년도 서울대 논술 문제와 유사하다. 서강대는 전통적으로 철학적인 주제를 선호해 왔다. 올해 역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들라고 한 점에서 시사적인 감각을 어느 정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존과 익명성’은 모든 논술 참고서가 다루고 있는 주제지만 깊이 있는 사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학생에게는 언제나 어려운 논제다.

서강대 논술 시험이 어려운 것은 주제도 주제이거니와 제시문 독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마르틴 하이데거, 에즈라 파운드, 엘리아스 카네티 등 서구의 지성사를 순례하며 학생들을 괴롭혔다. 이 밖에 소설가 장용학(소설), 시인 최영미(시), 한양대 임지현 교수(평론집) 등 국내 지식인의 다양한 형식의 글이 쓰였다. 이들 제시문의 공통점은 대체로 현대 사회의 익명성과 대중 사회의 문제점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데거와 임지현 교수의 글은 “현대 사회는 각자의 차별성이 사라지면서 개인이 집단에 종속되고 이는 대중 독재로 나아가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 다수결 제도의 문제점, 일탈과 방전을 군중 속에서 찾는 개인의 군중 심리 등을 보조 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서론에서 이들 제시문의 핵심 키워드를 찾아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기하고 본론에서 이런 문제점이 현재 우리 사회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우선 익명성의 이름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곳으로 인터넷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논제의 행간을 읽어보면 집단과 개인 중에서 어느 쪽을 우선시할 것이냐는 가치론적인 질문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피상적인 접근에 그치지 말고 이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본론 후반부나 결론 도입부에서 시도하는 것이 좋다.

- 신진상·지식아카데미 독서·논술연구소장